대한민국임시정부 대일선전포고

1941년 12월10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대일선전포고

역사정보

대한민국임시정부 대일선전포고
  • 지역

    국외

  • 일자

    1941.12.10

  • 유형

    임시정부

소개글
1941년 12월10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대일선전포고

역사 요약

대한민국 임시 정부 대일선전성명서 우리는 3,000만 한국인 및 정부를 대표하여 중국⋅영국⋅미국⋅네덜란드⋅캐나다⋅오스트레일리아 및 기타 제국(諸國)의 대일(對日) 선전 포고를 삼가 축하한다. 이것은 일본을 쳐부수고 동아시아를 재창조하는 가장 유효한 수단이다. 이에 특히 아래와 같이 성명서를 낸다. 1. 한국 전체 인민은 현재 이미 반침략 전선에 참가하였고, 일개 전투 단위가 되어 축심국(軸心國)에 대하여 선전 포고한다. 2. 1910년 합병 조약 및 일체 불평등 조약이 무효임을 거듭 선배포한다. 아울러 반침략 국가들이 한국 내에 가지고 있는 합리적 기득권익을 존중한다. 3. 왜구(倭寇)를 한국⋅중국 및 서태평양에서 완전히 축출하기 위하여 혈전으로 최후의 승리를 이룩한다. 4. 맹세코 일본이 비호하여 조성된 창춘(長春)1) 및 난징 정권(南京政權)2)을 승인하지 않는다. 5. 나구선언(羅邱宣言) 각 조를 단호히 주장하며 한국 독립을 실현하기 위하여 적용하며 이것으로 인해 특히 민주 전선의 최후 승리를 미리 축하한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 주석 김구(인), 외무부장 조소앙(인) 대한민국 23년(1941) 12월 10일 백범김구선생전집편찬위원회, 『백범김구전집』 제5권, 서울신문사, 1999, 102~103쪽(국사편찬위원회,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 8에 재수록) (해설) 이 사료는 1941년 12월 7일 일본군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으로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대한민국 임시 정부 김구(金九, 1876~1949) 주석과 조소앙(趙素昻, 1887~1959) 외교부장 명의로 일본에 대한 선전 포고를 명문화한 자료이다. 일제는 1937년 중일 전쟁을 일으켜 중국 대륙에 대한 침략을 본격화하였다. 초기의 기세와 달리 중국 전선에서 고전이 계속되면서 전쟁이 장기화되자 일본은 자원과 원료 부족에 시달렸다. 이에 미국이 일본에 군대 철수를 요구했고, 일본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1939년 ‘미일 통상 조약’을 파기하고 일본에 대한 석유 및 자원 수출을 전면 금지하였다. 그러자 일본은 1941년 12월 진주만을 습격하며 태평양 전쟁을 일으켰다. 이에 당시 중경에 정착해 있던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곧바로 대일 선전 포고를 하였다. 이것이 곧 1941년 12월 10일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배포한 「대일 선전 성명서(對日宣戰聲明書)」이다. 「대일 선전 성명서」는 전문과 5개 항의 성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원문은 한문으로 작성하였다. 전문에는 중국을 비롯한 연합국의 대일 선전 포고에 대해 절대적 지지를 분명히 표명하였다. 본문에서는 한국 인민이 연합국의 일원이 되어 ‘축심국(軸心國)’, 즉 주축국에 맞서 싸우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명하였다. 그 중에서 일제가 주적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으며, 따라서 대일 항전의 각오를 선명하게 드러냈다. 성명서의 5번 항에 나오는 ‘나구선언(羅邱宣言)’은 1941년 8월 14일 미국 대통령 루스벨트와 영국 수상 처칠이 공동으로 발표한 「대서양 헌장(Atlantic Charter)」을 가리킨다. 이 헌장은 연합국의 참전 목표와 전후 새롭게 전개될 세계 질서에 대한 미국과 영국의 공동 입장을 정리한 것이다. 이 헌장 안에 들어 있는 “주민의 자유의사에 반하는 영토 변경은 인정하지 않는다. ”거나 “강탈된 주권과 자치가 회복되길 희망한다. ” 등의 조항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게 매우 고무적인 내용이었다. [출처-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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